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한 대토벌 작전 (문단 편집) == 진행 == 작전은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1단계 작전은 변산반도 - [[남원]] - [[하동군]]으로 이어지는 봉쇄선을 설치하는 것이 골자였다. 제2단계에서 육군 2개 연대는 [[광주광역시|광주]], [[영광군|영광]] 등으로 남하하면서 의병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서부를 맡은 제1연대는 [[영산강]]을 따라 상류에서 하류 쪽으로, 동부를 맡은 제2연대는 [[섬진강]]에서 [[소백산맥]]을 통과해 [[영산강]]으로 진격했다. 제3단계에서는 해상 루트를 이용해 섬으로 숨으려는 의병을 추적하기 위해 [[해군]] 수뢰정 4척을 이용하는 도서 지방 초토화 작전이었다. 당시 의병은 활동 지역 근처의 민간인들의 후원을 필수적으로 하는 게릴라 세력이었으므로, 호남 일대 민간인들에 대한 탄압도 이 과정에서 뒤따랐다. 특히 일본군은 의병을 후원해주는 것으로 의심되는 마을을 포위하고, 호적 또는 명부나 민적 등에 기록된 남자를 일일이 대조하면서 무언가 의심스러운 점이 나타나면 추궁하였으며, 의병을 숨겨주고 식량을 제공했다는 증거가 잡히면 해당 마을을 잔혹하게 초토화시켰다. 이 때문에 호남의 민간인들은 일본군에게 보복당할까봐 의병을 숨겨주거나 지원해주는것을 기피하였고 의병들은 이전처럼 민간인들에게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한 번 수색한 마을을 불시에 다시 수색하면서 [[일본군]]의 단속을 피해 숨었다가 안심하고 다시 나타난 의병을 사살하고 체포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주었다.[* 의병과 관련이 깊은 곳은 수십번까지도 수색을 했다.] 이러한 일제의 군사적 압박에 의병들은 전면전을 회피하고 은신처를 자주 옮기거나, 부대를 나눠 각개적으로 일본군의 봉쇄선을 뚫으려고 시도하면서 전력 보존을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 군경이 친일 밀정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 이동로에 매복까지 하면서 철저하게 때려잡는 바람에 큰 소득은 없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이 과정에서 기존의 행정 구역마저 파괴하는 짓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전라남도]] [[낙안군]]에 있던 [[벌교]]라는 마을에서 의병장 [[안규홍]]이 맨손으로 일본 육군 헌병을 때려죽였다는 이유로 낙안군을 폐군해 버렸다. 게다가 낙안 지역을 2개로 나누어 보성, 순천에 각각 편입하여 행정 구역이 갈려버렸다. 그리고 옛 낙안군 지역은 옆도시 순천이 산업이 탄탄한 중견도시로 성장하는 동안 완전히 소외되었다.[* 21세기 현대에 낙안 지역의 유명 관광지가 된 [[낙안읍성]]은 전국이 경제발전하던 시대에 발전 동력이 전혀 없다보니 오히려 보존이 잘 되어 관광지가 된 케이스다. 일제의 만행이 전화위복이 된 극단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